2018. 06. 16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마태오 5,33-37 (정직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선거와 공약>

 

지난 수요일 전국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당선자와 그 지지자들에게는 축하를 드리고, 낙선자와 그를 지지했던 분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드립니다. 그리고 당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당선되었다는 사실에 안주하지 말고, 유권자와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이지요.

 

모든 선거에는 당선자와 낙선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흔히 당선자는 승리한 사람이고, 낙선자는 패배한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누가 당선되었든 승리자는 오직 유권자이어야 합니다. 입후보한 사람의 진정성은 자신의 명예나 영달이 아니라, 유권자를 위한 헌신적인 봉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입후보자들은 지지를 호소하면서 공약을 내겁니다. 공약이 담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지라도,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자신이 속한 정당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들의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지향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약만 놓고 보자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유권자인 국민이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매일 매일 선거가 있다면, 우리나라는 이내 지상의 천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매번 선거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이런 저런 이유로 가차 없이 공약이 폐기되는 것을 보면, 또 다시 선량한 유권자들이 당선자들을 위한 선거의 들러리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공약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입후보자가 유권자에게 하는 공식적인 약속이요 맹세입니다. 이를 통해서 입후보자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이 맹세는 자신의 부족함이나 추함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자아여야 합니다. 따라서 공약을 파기하는 당선자는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미련 없이 내던지는 것입니다.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임을 시인하는 것이고, 기회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며, 존재감 없는 먼지라고 스스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 공약이건만, 선거철만 되면 실현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은, 단지 유권자들의 입맛만 돋우는 온갖 분홍빛 공약이 넘쳐납니다. 일단 당선되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공약을 남발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마치 관행이나 되는 것처럼, 중요한 공약들을 슬그머니 내버립니다. 이렇게 해도 유권자들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거나 거센 저항에 부딪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킬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지킬 수 없기에 공약을 폐기하는 악순환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지도 모릅니다.

 

선거에서 유권자를 향한 맹세인 공약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약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인품, 진정성, 가치관입니다. 흔히 공약을 보고 입후보자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입후보자를 보고 공약의 의미와 실현가능성을 평가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뿐만 아니라,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맹세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입이 아니라 몸으로 자신을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삶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다면, 굳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나는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맹세라는 형식을 통해서 강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 할 것은 ,’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차한 변명이나 자기합리화가 필요 없는, 정의와 진실을 항구하게 추구하는 투명한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정치인들, 특히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이 어느 누구보다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깊이 새겨야 할 사람들일 것입니다. 전국지방선거가 끝난 지 이제 사흘이 지나,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 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에 당선된 분들만큼은 예수님의 말씀을 유념하여 국민들을 위해서 헌신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