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22 전교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마태오 28,16-20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혹시 나중에 종교를 갖게 되면 나도 성당에 갈게>

- 정의구현사제단 소식지 빛두레기고문 -

 

19926월 초에 전망 좋던 광고대행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후임자가 올 때까지 두 달여를 더 다니다가, 810일 마지막 출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된 그곳에서의 48개월 동안의 생활을 마쳤습니다. 사표를 낸 후 마지막 출근까지 두 달여 동안은 환송회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부서 저 부서, 조금 과장하면 거의 모든 회사 사람들과 환송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했고, 사무장으로서 일 년 동안 전임하면서 혁혁한 공(?)을 세운 덕입니다.

 

왜 그만 두는 거야?” “신학교 갈 겁니다.” “정말? 다른 데로 옮기는 것 아니야? 솔직히 말 해봐.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오랫동안 고민하다 더 늦출 수 없어 결정한 겁니다.” “나야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신부 생활 쉽지 않다고 하던데.” “하느님이 계시잖아요.” “광고 일 재미없어?” “신부가 되고자 하는 마음만 없다면, 이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연이은 환송회 자리에서 첫 대화는 의례 이렇게 진행되었고, 한 잔 두 잔 나누다 얼큰하게 취할 때까지 진하게 우정을 나누다 헤어질 때면, 몇몇 동료들은 이야기했습니다. “꼭 신부가 되기를 바래. 혹시 나중에 종교를 갖게 된다면 나도 성당에 갈게.”

 

가까이에서 함께 했던 동료 선후배에게 저는 천주교 환자(?)로 비쳐졌습니다. 교회청년운동에 여념이 없던 시절, 매주 3~4회 회합, 주말 활동, 모꼬지와 연수, 집회 등 직장인으로서 버거웠을 저의 일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미처 하지 못하는 일들을 제가 도맡아 하는 듯, 많이 격려해주고 배려해주었습니다. 더 나아가 노동조합 결성 때부터 후에 사무장으로서 열정적이었던 까닭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했던 신앙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동료들이 우리 교회와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가끔씩 정겨웠던 옛 동료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우연치 않은 자리에서 몇몇 동료들을 만나기도 하고, 어렵사리 다시 이어진 인연을 곱게 간직하고 있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 천주교 신자가 된 이들도 꽤 있습니다. 동고동락하던 직장 동료가 신부가 되겠다며 홀연히 회사를 떠난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나중에 종교를 갖게 되면 나도 성당에 갈게.”라는 제가 듣기 좋으라고 했던 동료들의 오래 전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면서 작은 웃음 짓곤 합니다.

 

돌아보니 예수 그리스도에 반해 천주교 환자(?)로 살아왔지만, 학창시절에도, 직장생활 할 때도 곁에서 함께 걷는 벗들에게 성당에 가자고 권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신부가 되고 나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 땅에 하느님나라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한걸음 내딛고 싶을 따름입니다. 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몸소 일하실 수 있기를 소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