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02 위령의 날 - 둘째 미사

 

마태오 11,25-30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내 멍에를 메어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위령의 날에 선종(善終)을 희망합시다>

 

11월에 들어서면 가을 산하를 울긋불긋 색색이 곱게 물들였던 나무 잎들이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이즈음에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아름다웠던 삶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면서, 바쁜 일상에 쫓겨 잠시 잊고 지냈던 그들과의 깊고 애틋한 친교를 다시금 이루게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해마다 늦가을 11월을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지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교회 전례력으로 보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시기를 앞 둔 한 해의 마지막 달로서, 일 년이라는 삶의 마지막을 더욱 정성껏 보듬으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때입니다.

 

오늘은 위령성월 가운데 특별히 우리를 떠나 하느님께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곧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는 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사람의 죽음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지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선종(善終)’이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선종은 착한 죽음, 거룩한 죽음이라는 뜻의 참으로 곱고 따뜻한 단어입니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침을 의미하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선종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선종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까운 죽음, 비참한 죽음,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써 선종이라고 말하고픈 까닭은 모든 죽음은 아름답고 치열했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위령의 날에는 인간적으로는 더없이 비통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더 귀한 선종(善終)을 맞이했던 한 사람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바로 지난 925일 하느님 품으로 떠나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가 그 사람입니다. 임마누엘 형제는 서울대병원 병상에서 317일간의 사투 끝에 선종(善終)하였습니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억울한 죽음이지만 굳이 선종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젊은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고 귀향 후 평생 농부로서 생명을 보듬었던 그의 삶의 이력과 이 땅의 죽어가는 농민과 농업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다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작년 1114일 이후 죽음의 여정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형제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종한 이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믿음의 벗님들의 애틋한 기억 속에도 선종한 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누가 되었든 선종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매일의 삶 안에서 우리 자신의 선종에 대해서 미리 미리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선종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죽음 역시 선종이라 불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언젠가 선종을 맞이하기 위해서만, 지금여기의 삶을 정성껏 보듬는 것은 아닙니다. 선종은 단 하나 고귀한 삶의 목적이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사랑으로 채워진 아름답고 의로우며 거룩한 삶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선종은 제 살 길 찾아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한계를 모르는 비인간적인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향한 헌신과 벗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은 섬김과 나눔을 사는 이들에게 마침내 주어질 주님의 편한 멍에이고 가벼운 짐이며, 영원한 안식입니다(마태 11,29-30 참조). 선종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의로운 행위로 모든 이를 의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는 이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선물입니다(로마 5,18 참조).

 

그러기에 오늘 제1독서는 선종한 의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선종을 향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에 함께 하는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위령의 날인 오늘을 단지 막연하게 선종을 희망하는 날로 여기지 않고,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픔을 슬퍼하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영원을 향한 순간으로 보듬으시기를 바랍니다(마태 5,3-1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