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강론길잡이 선포와 봉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5. 12. 13 대림 제3주일-다해 제1독서

 

스바니아 3,14-18(예루살렘의 재건)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주님께서 너에게 내리신 판결을 거두시고 너의 원수들을 쫓아내셨다. 이스라엘 임금 주님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니 다시는 네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하리라. “시온아,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시리라.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참 기쁨에로의 초대>

 

나는 모든 것을 땅 위에서 말끔히 쓸어버리리라. 주님의 말씀이다.”(1,2)라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외침으로 시작한 스바니야서는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3,14)라는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초대로 마무리됩니다. 그렇다면 이 기쁨과 희망이 과연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어쩌면 저주에서 축복에 이르는 과정을 애써 무시하고, 결론만 보고 아전인수 격으로 나의 기쁨, 나의 희망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의 입을 빌은 주님의 초대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하기에, 과연 내가 이 초대에 합당한지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성찰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성찰을 위해서 예언자가 과연 누구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언서의 메시지는 크게 하느님과 갈라선 이들에게 주어질 두려움의 심판하느님과 함께 한 이들에게 주어질 기쁨과 희망의 구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언자의 심판의 메시지는 하느님과 맞서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들은 하느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는 자들(1,4-5),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자들(1,6), 이교도들의 생활방식에 젖은 상류층 사람들(1,8), 폭력과 속임수로 하느님의 집을 더럽히는 자들(1,9), 탐욕으로 제 배를 채우는 자들(1,11.13), 권력으로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치 지도자들(3,3), 하느님의 말씀 대신에 제 말을 떠벌리는 허풍쟁이 예언자와 거룩한 것을 더럽히는 타락한 사제들(3,4)입니다. 이들은 “‘주님은 선을 베풀지도 않고 악을 내리지도 않으신다.’하고 마음속으로 생각”(1,13)하며 겉으로는 하느님의 사람인 척하더라도 하느님과 무관하게, 아니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제 삶을 영위하는 실질적인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법규를 실천하는 모든 겸손한 이들(2,3)에게 예언자는 구원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이름만을 신뢰하는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3,12),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3,13) 가운데에 주님 친히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불의와 거짓과 사기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 충실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 절뚝거리는 이들, 흩어진 이들, 억눌린 이들(3,19)에게 구원의 기쁨이 꽃필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독서의 말씀은 각자의 말과 생각과 행위, 곧 각자의 구체적인 삶과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주어진 달콤한 말씀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에 자신을 내어맡기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만이 품을 수 있는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다시 한 번 이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외쳐봅니다.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3,14). 숨죽인 이들이 환성을 지릅니다. 눈물로 지새우던 이들이 환한 웃음 짓습니다. 슬픔에 짓눌린 이들이 흥겹게 기쁨의 춤을 춥니다. 온갖 폭력으로 짓밟히고 갈기갈기 찢긴 약한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자기 탓 없이 목숨 같은 일자리를 빼앗긴 해고노동자들에게,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고 피눈물로 지새우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난민들에게, 우리가 기억하든 그렇지 못하든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개인적인 악과 사회구조적 악으로 말미암아 스러져가는 무수히 많은 작은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선포됩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이들의 고통이 너무나 쉽게 개인 탓으로 돌려지는 약한 이들입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려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잡자니 사람이 두렵고 놓자니 하느님이 두려운 뜨거운 감자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단지 현세적 물질적 행복으로 단순히 치환하는 세속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든 이들의 눈에는 하느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쯤으로 치부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로 이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희망의 담지자가 됩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주 하느님께서 그들 한가운데 계시기(3,15.17)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으로 힘을 주시어 나날이 새롭게 하시기에(3,17), 가난한 이들, 억압받는 이들, 약한 이들은 두려움 없이 현실의 고통과 인간적인 불행에 당당하게 맞서 전진할 것입니다(3,15). 그리고 쉼 없이 나아가는 이들 때문에 하느님께서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웅크린 이들을 일으켜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몸소 이들에게 기쁨이 되었듯이, 힘차게 일어남으로써 억눌린 이들이 하느님께 기쁨이 될 것입니다(3,17).

 

이제 다시 우리 자신을 보고 싶습니다. 찢기고 짓밟힌 이들과 함께 하시는 가난하신 하느님이 우리 기쁨의 원천입니까? 죄 없이 죽어가는 약한 이들을 보듬음으로써 하느님의 기쁨이 되고 있습니까? 스바니야 예언자가 기쁨에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