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01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루카 10,21-24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께서 누구이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이르셨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서울 도심 한복판 제 각각 뽐내는 커다란 건물들 사이에 시원스레 정갈하게 단장한 광화문 광장이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함께 모여 맘껏 즐길 수 있기에 말 그대로 너른 마당입니다. 빌딩숲 쏟아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오히려 어두움 깊게 드리워진, 양쪽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소음으로 오히려 깊이 숨죽여 있는 세월호 광장이 있습니다. 군데군데 두른 경찰 차벽으로 모든 이 품는 광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외로운 섬입니다. 2014416,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인간의 탐욕이 빚은 참혹한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은 이 시대 가장 고통스런 사람들은 품는 세월호 광장이 되었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이루려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들을 위로하려고 선한 이들이 멀리에서도 찾아 왔습니다. 평생 씻지 못할 가족들의 피눈물을 애써 닦아 주고자 따뜻한 이들이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해고노동자, 철거민, 농민, 삼척과 밀양, 멀리 제주 강정에서 힘든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착한 이웃들까지 지금 가장 고통 받는 이들과 기꺼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광화문 세월호 광장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너른 마당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단지 시간만 흐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의 진상 규명을 외쳤던 그 거센 함성은 어디에 갔을까요?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제 것처럼 받아들이던 그 무수한 선한 양심들은 어디로 흩어졌을까요? 세월호를 완전히 가라앉히려는 치졸한 공작을 서슴지 않는 검은 세력들의 움직임은 더욱 날렵해지고 정교해지는데, 이들에 맞서 진실을 밝혀야 할 정의의 사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너른 마당이 점점 외로운 섬이 되어갑니다. ‘너른 마당을 가득 채웠던 거룩한 분노의 함성은 흐릿해지지만, ‘외로운 섬을 떠날 수 없는 벗들의 더욱 처절하고 절실한 정의와 진실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른 마당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고마웠던 많은 벗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외로운 섬을 애써 찾는 착한 벗들의 끊이지 않는 연대의 발걸음에 자그마한 힘을 더합니다.

 

너른 마당이 점점 외로운 섬이 되어갑니다. 헛된 탐욕을 채울 자본과 권력을 쥐고 있는 세월호의 책임자들은 역시 시간이 지나면 돼.’라고 떠들며 비웃고 있겠지요. 이들에게 매수된 노예 같은 사람들, 거짓 언론을 생산하고 퍼뜨리는 사람들, 거짓 언론에 현혹되면서도 스스로 지혜롭고 똑똑하다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제 곧 세월호가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리라 희망의 노래를 부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저들의 기쁨은 곧 슬픔으로 바뀔 것입니다. 저들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결코 제 힘을 과신하며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가진 자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편에 서서 떨어지는 떡고물로 구차하게 삶을 연명하면서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허황된 사람들을 통해서 결코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오직 선한 것을 선하다 하고, 악한 것을 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철부지들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은 어두움을 빛이라 하지 않으며 오직 빛만을 빛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두움을 몰아내는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외로운 섬을 지키는 사랑하는 벗님들, 그러니 실망하지 맙시다.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만이라도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는 철부지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철부지 하나를 통해서 열 스물 백을 낳으실 것입니다. ‘외로운 섬을 결코 외롭지 않도록 보듬는 벗님들, 그러니 재물과 권력을 추구하는 썩은 지혜와 더러운 슬기의 작은 찌꺼기마저 아낌없이 불사릅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느님의 선하신 뜻이 온 누리에서 들불처럼 타오를 수 있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