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에서 발간하는 강론길잡이 선포와 봉사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6. 01. 24 연중 제3주일-다해 제2독서

 

1코린토 12,12-30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몸은 한 지체가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해서, 몸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온몸이 눈이라면 듣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온몸이 듣는 것뿐이면 냄새 맡는 일은 어디에서 하겠습니까?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눈이 손에게 나는 네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고, 또 머리가 두 발에게 나는 너희가 필요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또 우리의 점잖지 못한 지체들이 아주 점잖게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점잖은 지체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입니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사도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예언자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교사일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기적을 일으킬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병을 고치는 은사를 가질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로 말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두 신령한 언어를 해석할 수야 없지 않습니까?

 

<공동선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바오로 사도의 하나인 몸과 여러 지체에 대한 가르침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공동체 안에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쉽지만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의 가르침은 사회교리의 근본 원리인 인간 존엄성의 원리에서 도출된 3대 기본 원리, ‘공동선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와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12,12.18.20).

 

<공동선의 원리>

 

여러분은 마치 이미 의인이 된 듯이 자신 안에만 머물며 고립되어 있지 말고, 같이 모여서 모든 이에게 유익한 것을 함께 찾도록 노력하십시오”(() 바르나바 서간, 4,10).

 

사회적 본성을 타고난 인간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권위 하에 사회에서 그의 삶을 영위하고,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충분히 개발하고 진보시키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현세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하여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인 결합을 추구합니다. 그리하여 인간 공동체의 기초 단위이자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가정에서부터 여러 공동체들, 국가, 그리고 국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이러한 공동체들이 인간 존엄성의 고양과 인간다운 삶의 질의 보장이라는 고유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 공동선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공동선의 원리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 일치, 평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공동선이란 집단이든 구성원 개인이든 더욱 충만하고 더욱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 조건의 총화”(사목헌장, 26)를 가리킵니다. 곧 공동선은 개인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처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가치를 지닌 사람답게, 사회는 소유나 권력에 따른 지배와 억압, 죽음 같은 경쟁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 일치와 화해로 모든 인간이 살 맛 나는 인간사회답게 만들어 가는 제반 사회생활의 조건들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공동선이 개인이나 크고 작은 조직들이 필요로 하는 이익을 단순히 합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실현해야 하는 사회 공동체 차원의 도덕에 적합한 선입니다.

 

공동선은 세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첫째, 공동선은 자유를 지닌 인격체로서 인간의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둘째, 공동선은 사회의 안녕과 집단 자체의 발전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공권력은, 모든 사람이 인간적 삶을 위해 지녀야 할 권리(의식주, 보건, 노동, 교육과 문화, 가정을 이룰 권리 등)들을 보장해야 합니다. 끝으로 공동선은 공동체의 올바른 질서의 지속과 안전, 곧 평화를 지향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907-1909항 참조).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다른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 삶의 완성에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공동선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포함합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공동선을 이루고 증진하는 데에 협력할 의무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동선을 달성하여야 할 책임은 특별히 국가에 있다. 국가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됩니다. 공동선은 정치권력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선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는 사회 각계각층의 상이한 이익 추구를 정의의 요구와 조화시켜야 하는 각별한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교회는 공동선의 실현에 있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촉구합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권리, 특히 노동자들과 같은 약자, 여성과 어린이들의 권리를 맨 먼저 보호하여야 하며, 공권력은 정의와 공평을 고려하되 사회적 약자들에게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국가적 차원의 공동선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전 세계적 차원의 공동선, 인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온 세상을 아우르는 피조물 전체의 보편적 공동선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우리는 몸의 지체 가운데에서 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감쌉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자란 지체에 더 큰 영예를 주시는 방식으로 사람 몸을 짜 맞추셨습니다. 그래서 몸에 분열이 생기지 않고 지체들이 서로 똑같이 돌보게 하셨습니다.”(12,22-23.25)

 

<보조성의 원리>

 

모든 사람은 개별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고유한 인격체로서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존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올바르고 건강하게 키워나가야만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는 동전의 양면처럼 구분되지만 분리될 수 없습니다.

 

개인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고, 공동체는 개인을 존중할 때에, 개인과 공동체가 상생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공동체에 무관심한 채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되거나 발전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한 편 공동체가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공동체는 개별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삶의 족쇄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분리될 수 없지만, 분명히 구분되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고,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임무와 동시에 개인을 위한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개인을 위한 공동체의 역할, 좀 더 넓혀서 보자면, 하위 공동체나 사회단체를 위한 상위 공동체나 사회단체의 역할을 보조성의 원리를 통해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황 비오 11세의 회칙, 사십주년35항에서 이 원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창의와 노력으로 완수될 수 있는 것을 개인에게서 빼앗아 사회에 맡길 수 없는 것처럼, 한층 더 작은 하위의 조직체가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역할을 더 큰 상위의 집단으로 옮기는 것은 불의이고 중대한 해악이며, 올바른 질서를 교란시키는 것이다. 모든 사회활동은 본질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성원들을 돕는 것이므로 그 성원들을 파괴하거나 흡수해서는 안 된다.”

 

보조성의 원리에서 보조예비 부분에서의 도움을 의미합니다. 사회가 자기의 지체들에게 베풀어야 할 것은 도움이며 그 이상이 아닙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개인이나 하위의 소규모 공동체의 독자적이고 고유한 권리와 역할을 온전히 보존하는 한에서, 서로 다른 공동체간의 관할권의 경계를 지음으로써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며, 상호간에 도움을 줌으로써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이념에서 도출됩니다. 따라서 보조성의 원리는 도와주되 간섭하지 말라.” 라고 쉽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모든 상위 질서의 사회(예를 들어, 국가)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 대하여 도움(보조)의 자세, 따라서 지원과 증진과 발전의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 중간 단체들은 그들 고유의 임무를 다른 상위 단체들에게 부당하게 양도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제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며, 사회 중간 단체들은 결국 상위 단체들에 흡수되거나 대치되어 고유의 품위와 본연의 위치를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 하위 단체들에 대한 경제적 제도적 사법적 지원이라는 적극적 의미와 사회를 구성하는 더 작은 기본 세포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사실상 제한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하도록 국가에 요구하는 소극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제 입맛에 맞는 관변단체들에게는 과도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비판적인 단체들에게는 적법한 지원조차 하지 않는다면, 이는 보조성의 원리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2,26)

 

<연대성의 원리>

 

함께’, ‘더불어’, ‘서로’, 이 모두는 관계를 염두에 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이 단어들은 모든 사람이 지닌 개별성사회성가운데에 특별히 사회성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들을 아우르는 것이 연대입니다. 보조성의 원리가 인간의 개별성에 기원을 두고 있다면, 연대성의 원리는 인간의 사회성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연대성은 인간의 타고난 사회적 본성, 모든 인간의 평등한 존엄과 권리, 그리고 일치를 향한 개인과 민족의 공동 노선을 특별히 강조”(간추린 사회 교리, 192)합니다.

 

연대성이란 공동으로 하나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여러 사람들의 공동 의무와 공동 책임을 뜻합니다. 연대성에 따라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공동의 책임, 공동의 의무는 개인이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연대성을 거스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사회적 관심38항에서는 연대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연대성은 가깝든 멀든 수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서 막연한 동정심 내지 피상적인 근심을 느끼는 무엇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도 항구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 이런 결의는 완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이익에 대한 욕망과 권력에 대한 갈망임이 분명하다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를 둔다.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이 같은 태도와 죄의 구조대칭적으로 이와 상반된 태도로만 극복이 가능하다. 타인을 착취하는 대신에 이웃의 선익에 투신하고 복음의 뜻 그대로 남을 위하여 자기를 잃는각오로 임하는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남을 억압하는 대신에 그를 섬기는것이다.”

 

연대성은 입이나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 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루카 4,18)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헐벗은 이를 입혀 주고 아픈 이를 돌봐주는 것(마태 25,35-40 참조)입니다. 특별히 인간의 탐욕과 사회적 불의에 희생된 이웃들을 섬기고 돌보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루카 10,29-37). 따라서 연대성의 원리는 “‘우정이나 사회적 사랑’”(가톨릭 교회 교리서, 1939)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통한 연대의 삶에로 초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 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의 고귀한 사명이며 의무입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신 예수님처럼, 구체적인 삶의 현장 안에서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성사(聖事)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