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02 위령의 날 - 첫째 미사

 

마태오 5,1-12(참행복)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위령의 날을 맞아 선종(善終)을 희망합시다>

 

11월에 들어서면 가을 산하를 울긋불긋 색색이 곱게 물들였던 나뭇잎들이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삶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이즈음에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아름다웠던 삶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면서, 바쁜 일상에 쫓겨 잠시 잊고 지냈던 그들과의 깊고 애틋한 친교를 다시금 이루게 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해마다 늦가을 11월을 특별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지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교회 전례력으로 보면,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시기를 앞 둔 한 해의 마지막 달로서, 일 년이라는 삶의 마지막을 더욱 정성껏 보듬으며,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때입니다.

 

오늘은 위령성월 가운데 특별히 우리를 떠나 하느님께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는 위령의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 곧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는 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을 돌아봅니다.

 

사람의 죽음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지만,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선종(善終)’이라는 단어를 즐겨 씁니다. ‘선종은 착한 죽음, 거룩한 죽음이라는 뜻의 참으로 곱고 따뜻한 단어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침을 의미하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선종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가 선종을 맞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타까운 죽음, 비참한 죽음,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애써 선종이라고 말하고픈 까닭은 모든 죽음은 아름답고 치열했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선종한 이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믿음의 벗님들의 애틋한 기억 속에도 선종한 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누가 되었든 선종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매일의 삶 안에서 우리 자신의 선종에 대해서 미리 미리 마음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선종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죽음 역시 선종이라 불리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언젠가 선종을 맞이하기 위해서만, 지금여기의 삶을 정성껏 보듬는 것은 아닙니다. 선종은 단 하나 고귀한 삶의 목적이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뜨거운 사랑으로 채워진 아름답고 의로우며 거룩한 삶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선종은 제 살 길 찾아 불의와 타협하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한계를 모르는 비인간적인 탐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향한 헌신과 벗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은 섬김과 나눔을 사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화해의 선물입니다. 선종은 십자가 죽음이라는 사랑과 정의의 행위로 모든 이를 의롭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입니다(로마 5,9-10 참조).

 

우리보다 먼저 선종하신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는 오늘은,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19,26-27)는 욥의 간절한 희망을 우리 안에 곱게 간직하고, 바로 지금 가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의 아픔을 슬퍼하며,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영원을 향한 순간입니다(마태오 5,3-11 참조). 그러기에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모두 모든 이의 선종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을 맞아 더욱 더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을 곱게 보듬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