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9. 20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순교의 여정에 기쁘게 함께 합시다>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걸어가신 부활을 향한 십자가의 길을 뒤이어 함께 걷는 믿음의 벗님들, 지난 한 주간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셨습니까? 벗님들께서는 무엇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셨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을 잠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한국천주교회의 첫 여정에 하느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뼈와 살이 짓이겨지는 참혹한 고난을 당하고 마침내 인간 이하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순교자들,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의 품에서 찬란한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나가며,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와 사랑 속에 영원한 삶을 살고 있는(지혜 3,7-9 참조)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피와 땀을 먹고 살아가는 믿음의 후예로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우리 역시 거룩하고 장엄한 순교의 대열에 기쁘게 함께 하리라 다짐합니다.

 

순교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장엄한 사명입니다. 물질적이든 영적이든 하느님의 다스림을 방해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따르라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교묘하게 유혹하며 협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매순간 순교와 배교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받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순교이고, 과연 무엇이 배교이겠습니까?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것이 순교입니다. 제 목숨 살리기 위해서 하느님을 버리는 것이 배교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것이 순교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느님으로 받드는 것이 배교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이 순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제 배 채우는 것이 배교입니다.

 

하느님 닮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것이 순교입니다.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 하느님 닮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배교입니다. 겸손한 마음과 청빈한 삶으로 하느님께서 빚은 피조세상과 벗하여 더불어 사는 것이 순교입니다. 한없는 탐욕을 채우려 하느님 담고 있는 피조세상을 처절히 짓밟는 것이 배교입니다.

 

순교와 배교! 핏빛 처참한 과거도 아니고, 미지의 불확실한 미래도 아니며, 지금여기에서 끊임없이 내려야할 그리스도인의 결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의 삶에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순교의 삶이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갈림 없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저 높은 곳도, 저 깊은 곳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이 미사에 함께 하시는 믿음의 벗님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정녕 맞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정녕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재물과 권력은 생명, 정의, 평화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갈라서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유혹이 오늘의 박해입니다. 믿음의 벗님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하셨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박해에 맞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과 마음으로 증거하며 순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갈라서서 배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피를 흘려 신앙을 지킨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의 후손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찬란한 영광 속에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순교자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후손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의 입과 마음으로 노래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향한 찬미와 감사는 이제 짓눌려 신음하는 생명들을 돌봄과 불의에 무릎 꿇지 않고 의연하게 맞서는 정의로운 투쟁과 온갖 유형무형의 폭력을 무력화하는 평화의 삶을 통해 온 누리에 퍼져나가야 합니다.

 

순교자들의 참혹한 핏자국을 곱게 닦아 새하얀 영광의 옷을 입히신 주님,

당신께서 몸소 뽑으신 자랑스러운 순교자들이 그러하였듯이

오늘을 사는 저희가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순교의 길을 걷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를 통하여 당신께서 살아계심을 온 누리에 드러내소서. 아멘.”